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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패망하고, 미처 본국으로 탈출할 시간을 벌지 못한 일본인 지주와 순사들을, 마을 장정들이 곡괭이로 쳐 죽이고 파묻을 때만해도 할머니에게 폭력은 정의로울 수 있는 것이었다. 역 앞 광장마다 총과 칼을 빼앗긴 일본 순사들이 몰매를 맞고 일장기가 불태워질 때만 해도, 증오는 정당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나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다소 잔인한... 이어지는 내용 ![]() [어사語絲] 57기에서 위탕語堂 선생께서 '페어 플레이(Fair play)'를 말씀하셨는데, 이런 정신이 중국에는 몹시 희귀하므로 이를 북돋우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고, 또 '물에 빠진 개는 때리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것으로 '페어플레이'의 뜻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영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 말의 뜻이 대체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만약에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 것이 그런 정신의 하나라면 나도 따지고 싶은 게 있다. 다만, 제목에 '물에 빠진 개를 때린다'고 직접적으로 쓰지 않은 것은 남의 눈에 띄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즉, 머리 위에 '가짜 뿔'을 달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역주: 보수파 지식인 천시잉陳西瀅이 [현대평론]에서 루쉰을 두고 '마귀의 머리 위 가짜 뿔 장식'이라고 공격한 것을 이름). 요컨대, '물에 빠진 개'는 때려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야말로 때려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일 따름이다. 2. '물에 빠진 개'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모두 때려도 되는 부류에 속한다 오늘날의 논자들은 흔히 '죽은 호랑이를 때리는 것'과 '물에 빠진 개를 때리는 것'을 함께 논하면서 둘 다 비겁한 일에 가깝다고 취급한다. 내 생각에는, '죽은 호랑이를 때리는 것'은 겁장이가 용감한 척 하는 것으로서 자못 익살스러운 점이 있으며, 비록 비겁하다는 혐의를 면할 수는 없지만 그 비겁은 귀여운 데가 있는 비겁이다. '물에 빠진 개를 때리는 것'으로 말하자면, 결코 그처럼 간단하지 않다. 그 개는 어떤 개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서 물에 빠졌는가를 보고서 결정해야 한다. 물에 빠진 이유를 연구해보면, 대체로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 ①개가 스스로 실족하여 물에 빠진 경우, ②다른 사람이 빠뜨린 경우, ③내가 직접 빠뜨린 경우. 앞의 두 경우를 만나서 부화뇌동하여 때린다면 물론 너무 시시한 일이고 어쩌면 비겁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개와 힘껏 싸우다가 내 손으로 그 놈을 물에 빠뜨렸다면, 물 속에 있는 놈을 죽간竹竿으로 마구 때린다 해도 심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앞의 두 경우와 함께 논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용감한 주먹은 이미 땅에 쓰러진 상대는 결코 더 이상 때려선 안 된다고 하는데, 이는 실로 우리가 모범으로 받들 만하다.하지만, 나는 여기에 한가지 조건을 덧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상대 역시 용감한 투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패배한 뒤,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후회하여 다시 찾아오지 않거나, 아니면 당당하게 복수를 하러 와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안될 것이 없다. 그러나 개로 말하자면, 그런 예를 적용하여 정정당당한 적수와 동일하게 볼 수 없다. 개가 아무리 미친 듯이 짖어대도 사실상 무슨 '도의'를 알 턱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는 헤엄을 칠 줄 알기 때문에 반드시 뭍으로 기어올라올 것이고, 주의하지 않으면 그 놈은 몸을 추켜세우고 한바탕 흔들어서 사람들의 몸과 얼굴에 온통 물방울을 튀기고서는 꼬리를 사리며 도망칠 것이다. 그 뒤로도 그 성정性情은 여전히 변치 않을 것이다. 어리숙한 사람이 개가 물에 빠진 것을 보고 세례를 받은 것이라 여기고, 이미 참회했음이 분명하며 다시는 물에서 나와 사람을 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참으로 착각치고는 대단한 착각이다. 요컨대, 사람을 무는 개라면, 전부 패도 되는 부류에 속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놈이 뭍에 있건 물 속에 있건. 3. 특히 발바리는 물 속에 처넣고, 그리고서 또 때리지 않으면 안된다 발바리는 일명 하바꺼우哈吧狗라 하고 남방에서는 서양개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중국 특산이고 세계 개 경연대회에서 종종 금상을 타곤 한다. [대大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의 개 사진에 몇 개가 있는데 바로 우리 중국의 발바리라고 한다. 이것도 일종의 국가적 영광이다. 그러나, 개와 고양이는 원수지간이지 않은가? 그 놈은 개이면서도 고양이를 몹시 닮았다. 절충적이고 공정하며 조화롭고 평정한 낯을 떠받들고 있고, 유유하게, 다른 놈들은 모두 과격한데 오직 제놈만 '중용의 도'를 터득한 것 같은 낯짝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부호, 환관, 귀부인, 숙녀들에게 총애를 받으며 그 씨가 면면히 이어져왔다. 그 놈의 일이란 뺀지르르한 털 덕분에 귀인의 손에 길러지거나, 국내외의 여인들이 외출할 때에 목에 가는 사슬을 맨 채 발뒤꿈치를 따라다니는 것뿐이다. 그런 놈들은 먼저 물 속에 처넣어야 하고, 그리고 또 때려야 한다. 만약에 그 놈이 스스로 물에 빠졌다면, 실로 쫓아가서 때려도 무방하다. 다만, 자신이 지나치게 사람이 좋은 호인이라면 물론 때리지 않아도 되지만, 그러나 그 놈을 위해 탄식할 필요는 없다. 발바리에게 그렇게 너그러울 수 있다면 다른 개들은 더더욱이 때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권세와 이익을 몹시 따르기는 하지만, 필경 아직은 어느 정도 늑대 같은 야성을 띠고 있고, 발바리처럼 양다리를 걸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상은 말이 나온 김에 한 말인지라, 본주제와는 큰 상관이 없는 것 같다. 4.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 것은 남의 자식을 망치는 일이다 요컨대, '물에 빠진 개를 때려야 하는가' 여부는, 우선 그 놈이 뭍으로 기어오른 뒤의 태도를 보아야 한다. 개의 성질은 대개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일만 년 뒤라면 혹시 지금과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이다. 만약에 물에 빠진 뒤의 처지가 몹시 불쌍하다고 여긴다고 한다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 중에 불쌍한 것들은 참으로 많다. 콜레라균만 하더라도, 생식이 빠르기는 하지만, 그 성격은 얼마나 미욱하리 만치 성실한가. 그러나 의사들은 그것들을 절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지금의 관료와 토착형 신사나 서양형 신사들은 자기 뜻에 어긋나기만 하면 즉시 빨갱이니 공산당이니 한다. 민국 원년 이전에는 좀 달랐다. 처음에는 캉당康黨이라 했고, 나중에는 거당革黨이라 했다. 심지어는 관에 밀고하기까지 했는데, 자신의 존엄과 영예를 보전하려는 면도 확실히 있었지만, 당시에 일컫던, '사람의 피로 관모의 장식을 붉게 물들인다'는 뜻도 없지만은 않았다(역주: 청대에는 붉은 색 관모가 가장 높은 일품관이었다. 청말의 관료와 신사들이 혁명당을 밀고하여 승진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뜻). 그러나 결국 혁명은 일어났고, 거드름을 피우던 신사들은 금세 상가집 개처럼 불안에 떨며 변발을 머리 위로 틀어올렸다. 혁명당은 새로운 기풍, 신사들이 전에 이를 갈며 증오하던 새로운 기풍을 발휘하여 제법 '문명'스러워졌다. 말인즉슨 '함여유신咸輿維新'이네, 우리는 물에 빠진 개는 때리지 않네, 너희들 마음대로 기어올라오든지 말든지 하네, 라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그 놈들은 기어올라왔고, 만국 2년 하반기까지 엎드려 있다가 2차 혁명 때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위엔스카이를 도와 수많은 혁명가들을 물어죽였다. 중국은 또다시 하루하루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고, 지금까지도 유로遺老는 말할 것도 없고 유소遺少조차 우글거리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선열들이 착한 마음씨로 요귀들에게 베푼 자비가 그 놈들을 번식시켰기 때문이다. 뒷날 사태를 알게 된 청년들은 어둠에 반항하기 위해 기력과 생명을 한층 더 소모해야 했다. 츄진秋瑾 여사는 바로 그 밀고로 죽었다. 혁명 이후에 잠시 '여협'이라 불리웠지만, 지금은 입에 올리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혁명이 일어나자, 그녀의 고향에 도독都督 – 지금의 이른바 독군督軍과 같다 – 이 부임했는데, 그녀의 동지였던 왕진파王金發이었다. 그는 츄진을 살해한 주모자를 체포하고 밀고 문건을 조사, 수집하여 그녀의 복수를 하려 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 주모자를 석방하고 말았다. 이미 민국이 성립된 마당에 더 이상 묵은 원한을 들추어서는 안되지 않겠느냐는 것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2차 혁명이 실패하고 나자 왕진파는 위안스카이의 주구에게 총살되었다. 여기에 관련된 유력자는 그가 석방해준, 츄진 살해의 주모자였다. 그 사람도 이제는 이미 '천수를 다하고 죽은' 뒤다. 그러나 그곳에서 계속해서 발호하고 출몰하고 있는 것 역시 이런 인간부류다. 그래서 츄진의 고향은 여전히 그 모양 그대로이고, 해가 바뀌어도 조금도 진보가 없다. 그 점에서 볼 때, 가히 중국의 모범이라고 할 이름난 도시에서 성장한 양인위楊陰楡 여사님(역주: 루쉰이 재직하던 베이징여자사범대학의 교장)과 천시잉 선생님께서는 참으로 복도 많으시지(역주: 양인위와 천시잉은 같은 쟝쑤성 우시無錫 출신으로, 천시잉이 글에서 '우시는 중국의 모범적인 도시'라 한 데 대한 비꼼). 5. 실각한 정객을 '물에 빠진 개'와 함께 논해서는 안된다 '남이 잘못을 범해도 따지지 않는 것'은 관용의 도이고, '눈에는 눈으로 갚고 이에는 이로 갚는 것'은 곧음의 도이다. 중국에 가장 많은 것은 굽음의 도이어서,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고도 도리어 개에게 물린다. 하지만, 그것은 실로 어리숙한 사람이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이다. 속담에 '충후하다는 것은 무용하다는 것과 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좀 각박할는지 모르겠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는 나쁜 짓을 하라고 부추기는 말이 아니라 많은 쓰라린 경험을 그러모은 뒤의 경구인 것이다.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다는 설을 예로 보면, 그런 설이 나오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때릴 힘이 없는 것이고, 둘은 비유를 잘못 한 것이다. 전자는 논외로 하고, 후자의 착오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실각한 정객을 물에 빠진 개와 잘못 동일시하는 것이고, 둘은 실각한 정객에도 좋은 자와 나쁜 자가 있음을 변별하지 않고서 일률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인 바, 그 결과 도리어 악을 방임하게 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정국의 불안정 때문에 실로 흥망의 교체가 수레바퀴 구르는 듯한데, 빙산에 의지하여 제멋대로 횡포를 부리던 악인이 일단 실족하면 갑자기 동정을 애걸하고, 그러면, 그자가 무는 것을 직접 보았거나 직접 겪었던 어리숙한 사람들은 갑자기 그자를 '물에 빠진 개'로 여겨 때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측은한 생각까지 가지며, 공리公利가 이미 신장되었고 이제는 우리가 의협심을 가질 때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자는 정말로 물에 빠진 적이 결코 없으며, 이미 소굴을 다 만들어놓았고 양식도 충분히 쌓아놓았다는 것 – 그것도 조계지 안에다 – 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상처를 입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기껏해여, 유유히 도망쳐 숨을 수 있도록, 절름발이 시늉으로 사람들의 애오라지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에 불과하다. 훗날 다시 들이닥쳐 전과 똑같이 먼저 어리숙한 사람들을 무는 것에서 시작하여 '우물에 빠뜨리고 돌을 던지는 짓'을 비롯,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 그 원인을 추적해보면, 일부는 바로 어리숙한 사람들이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았다는 데 원인이 있다. 그러므로, 좀 가혹하게 말하자면, 스스로 제 무덤을 파서 스스로를 묻는 노릇이지,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이다. 6. 아직은 애오라지 '페어'만을 할 수는 없다 어진 사람들은,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페어플레이'가 필요하지 않다는 거냐고 질문할 지도 모른다. 나는 즉각 대답할 수 있다.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 라고. 이것이 바로 '자업자득'으로 터득한 것이다. 어진 사람들은 그 방법을 사용하려 하지 않으려 할지도 모르나, 나는 그 방법이 일리가 있다고 말하겠다. 토착형 신사나 서양형 신사들이 늘상 말하지 않았던가, 중국은 중국적 특수성이 있어서 외국의 평등, 자유 등등을 적용할 수 없다고. 그 '페어플레이'도 그 중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는 당신에게 '페어'하지 않는데 당신만 그에게 '페어'하다가 결국 자신만 손해를 보게 되며, '페어'하고자 해도 할 수 없게 되고, 나아가서는 '페어'하지 않고자 해도 역시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페어'하려면, 먼저 상대를 잘 살펴보는 게 좋다. '페어'를 받을 자긱이 없는 자 같으면 굳이 대접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가 '페어'한 다음에 다시 그와 '페어'를 논해도 늦지 않다. 여기에는 이중 도덕을 주장한다는 혐의가 다분히 있는 듯하지만, 그러나 부득이한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국에는 바람직한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지금 중국에는 허다한 이중 도덕이 있다. 주인과 노예, 남성과 여성이 모두 서로 도덕이 다르고, 통일되어 있지 않다. 만약 '물에 빠진 개'와 '물에 빠진 사람'의 경우만 유독 동일시한다면 그것은 실로 편파적이고 시기상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와 평등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지만 중국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신사들이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페어플레이' 정신을 보편적으로 시행하려면 적어도 이른바 '물에 빠진 개'라는 자들이 인간다움을 띨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절대로 시행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즉, 앞에서 말한 것처럼, 상대를 잘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차등도 두어야 한다. 즉, '페어'는 반드시 상대가 누구인가를 보고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물에 빠졌든지 간에 사람이다 싶으면 돕고, 개다 싶으면 내버려두고, 나쁜 개다 싶으면 때린다. 한마디로 말해 '자기 패거리는 돕고 다른 패거리는 토벌하는 것(黨同伐異)'일 따름이다. 마음 속은 온통 '시어미 근성'이면서 입으로는 '공평한 도리'를 뇌까리는 신사들의 명언은 잠시 논외로 하더라도, 성실한 사람들이 부르짖는 공평한 도리 역시,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좋은 사람을 구조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리어 나쁜 사람을 보호해주기까지 한다. 나쁜 사람이 득세하여 좋은 사람을 학대할 때에는, 설사 공평한 도리를 부르짖는 사람이 있다 해도 나쁜 사람은 결코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부르짖음은 단지 부르짖음으로 그치고 좋은 사람은 여전히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어쩌다가 좋은 사람이 조금씩 일어서게 되면, 나쁜 사람은 본래 물에 빠져야 마땅한 것인데도, 성실한 공리론자들은 '보복하지 말라'느니, '너그럽게 용서하라'느니, '악으로써 악에 대항하지 말라'느니 떠들어댄다. 이번에는 실효가 나타나서 헛부르짖음으로 그치지 않게 된다. 착한 사람은 그 말을 옳다 여기고, 그리하여 나쁜 사람은 구제 받는다. 그러나 구제 받은 뒤에 그는, 틀림없이 이득을 보았다고 생각하지, 회개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더구나 진작에 굴을 세 개쯤 파놓은 데다가 아부를 잘하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혁혁한 세력을 회복하고, 전과 똑같이 나쁜 짓을 한다. 이때, 공리론자들은 물론 또다시 큰소리를 부르짖지만, 이번에도 나쁜 사람은 당신의 말을 듣지 않게 된다. '악을 미워하기를 너무 엄하게' 하고 '개혁을 너무 조급하게' 한, 바로 그 때문에 한나라의 청류淸流(역주: 후한 말엽 환관의 전횡과 조정의 무능을 비판하다 탄압당한 태학생 집단)와 명나라의 동림東林(역주: 명 말엽 정치적 개혁을 꾀했다가 실패한 학자 집단)이 실패했다고 하면서, 논자들은 항상 그들을 책망한다. 그러나 이 점은 전혀 모른다. 그 상대는 '선을 미워하기를 원수처럼'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빛이 어둠과 철저하게 싸우지 못하고, 어리숙한 사람들이 악에 대한 방임을 관용이라고 잘못 생각하며 계속해서 대충 넘어간다면, 오늘날과 같은 혼란 상태는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7. '상대방의 수법을 상대방에게 적용하라' 중국인은 한의를 믿는 사람도 있고 양의를 믿는 사람도 있다. 오늘날 좀 큰 도시에는 으레 두 종류의 의사가 다 있어서 사람에 따라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은 확실히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방법을 널리 확대시킨다면 틀림없이 원성이 훨씬 줄어들 것이고, 의외로 천하가 태평해질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민국의 보통 예절은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만은 큰 절을 하게 한다. 민국의 법률에는 태형이 없지만, 체형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에는 특별히 곤장을 때린다. 그릇과 젓가락, 밥과 반찬 등은 현대인을 위해 마련된 것이지만, 수인씨燧人氏(역주: 삼황오제 중 하나로 최초로 불을 사용해 음식을 익혀먹는 법을 가르쳐주었다고 함) 이전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그에게는 날고기를 먹인다. 또 초가집을 수천 호 지어서, 대저택에 살면서 요순堯舜을 흠모하는 높은 선비들이 있으면 모두 끌어다가 거기에서 살게 한다. 물질문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물론, 원한을 품으면서까지 자동차에 타는 일은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참으로, 이른바 '그들은 인仁을 추구하다가 인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원망하랴(求仁得仁又何怨)'가 될 것이며, 우리의 귀도 훨씬 더 깨끗해질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그렇게 하려 하지 않으면서 한사코 자신을 기준으로 남을 다스리려 한다. 그런 까닭에 천하가 복잡해진다. '페어플레이'는 특히 그 유폐가 커서, 심지어는 약점으로까지 변하여 나쁜 세력에게 유리한 점을 주기까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류바이자오劉百昭가 베이징여사대 학생들을 폭력으로 쫓아냈을 때 [현대평론]은 방귀조차 뀌지 못했는데, 일단 여사대가 회복되고나자 천시잉이 여대 학생들에게 교사를 점거하라고 선동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그들이 나가지 않겠다고 하면 어쩔 것인가? 강제로 그들의 짐을 들어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 않은가?” 폭력으로 쫓아내고 짐을 들어낸 류바이자오의 선례가 있는데, 어째서 유독 이번에만 '부끄럽다'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그가 베이징여사대 쪽에 '페어'의 기미가 있다는 것을 냄새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페어'는 도리어 약점으로 변하여, 거꾸로 이용당해서 장스쟈오(역주: 당시의 교육부장관) '유택遺澤'(역주: 양인위를 가리킴)의 보디가드가 되었다. 8. 결론 이상에서 말한 것들이 신과 구, 혹은 무슨 두 파벌 간의 싸움을 자극하여 악감정을 더욱 심화시키고 대립을 더욱 격화시키지 않을까, 하고 나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히 단언하거니와, 반反개혁가가 개혁가에게 끼치는 해독은 이제껏 한 번도 늦춰진 적이 없고, 수단의 악랄함도 이미 그 극에 달했다. 단지 개혁가들만이 아직도 꿈속에 머물면서, 항상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중국은 아직도 개혁을 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태도와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1925년 12월 29일 * 이 글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 린위탕林語堂은 1926년 1월 “사실의 경과를 보면, 모든 개는 두들겨 패서 물에 빠뜨린 후 계속 패야 한다는 루쉰 선생의 말을 더욱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 글에 찬성의 뜻을 밝혔으며, 이후 3.18 사건을 거치며 “오늘부터 베이징의 발바리나 누렁이나 사냥개 등 모든 개들을, 그리고 권력자들이 기르는 가축들까지도 모두 섬멸해야 한다”고 호응했다. ** 3.18 사건: 1926년 3월 18일 베이징의 각계 인사들과 10만 군중이 일본의 중국주권 침략행위에 반대하여 천안문에서 집회를 가진 후 뚜안치루이 집정부에 가서 청원하자 뚜안치루이가 사격을 명령하여 40여명이 사망한 사건. 정부는 이들이 '폭도'였다고 발표했다. 루쉰은 그 해 4월에 쓴 '부질없는 이야기'라는 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어떤 물건짝 – 내가 왜 이렇게 부르는가, 나는 말하고 싶지가 않다 – 들은 말한다. 데모대의 우두머리가 도의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고. 이런 물건짝들은 마치 맨 손의 데모대에게 총을 쏘는 것은 당연하고, 정부청사 앞이란 데가 원래 '사지死地'이니까 목숨을 잃은 자들이 스스로 그물에 뛰어든 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허나 데모대의 우두머리는 원래 뚜안치루이 등과 같은 무리들과 마음이 통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이제껏 한번도 교류한 적이 없었으니 어떻게 이런 음험하고 악랄한 수법을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악랄한 수법은 조금이라도 사람다운 구석이 있는 자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데모대 우두머리를 단련시키기 위해서 오류를 지적하자면 단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아직도 청원이 쓸모 있다고 생각한 것, 둘째는 상대를 너무 좋게 본 점이다.” *** 위 글은 '루쉰읽기모임'에서 옮긴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케이시 아카데미, 2003)"에서 참고한 것으로 본문 일부와 역주만 손을 보았다.
...이처럼 이때까지 학교제도의 이용률이 아주 낮았던 분파들이 학력자격을 획득하기 위한 경주와 경쟁에 뛰어들게 됨에 따라 이제까지 주로 오직 학교를 통해 스스로를 재생산해왔던 계급분파들은 자신들의 학력자격의 상대적 희소성을 유지하고 또 그것과 관련하여 계급구조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교육투자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처럼 학력자격과 그것을 부여하는 학교제도는 계급간 경쟁의 핵심적 쟁점 중의 하나가 되고, 이러한 경쟁은 교육수요의 전반적이고 계속적인 증대와 학력자격의 인플레이션을 야기하게 된다.
소위 '학교의 민주화'가 내포하고 있는 역설 중의 하나는 '해방하는 힘으로서의 학교l'ecole liberatrice'라는 제3제국의 이데올로기에서는 이제껏 무시하거나 기껏해야 모호하게 언급되고 말았던 민중계급이 중등교육에 들어가지만 결국 2급과정으로 추방되거나 배제당함으로써 보수적인 힘으로서의 학교ecole conservatrice를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희망과 실제적 기회 간의 구조적 괴리에서, 즉 교육제도가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다시 말해 교육제도가 임시적으로 제시하는 사회적 정체성과 학교를 마쳤을 때 노동시장이 실제로 제공하는 사회적 정체성 간의 괴리에서 비롯되는 집단적 환멸은 노동에 대한 흥미의 상실을 유발하고, 사회적 유한성에 대한 거부를 표명하는 근거가 되는데, 이것은 통상 청소년의 대항문화의 구성요소를 이루는 모든 도피와 거부의 근원이 된다. 이전 단계에서는 중등 교육의 조직 자체 그리고 교육이 제공할 수 있었던 진로들과 가르쳤던 과목들, 또 수여해주었던 학력자격들은 분명한 단절과 명확한 경계에 기반해 있었으며, 초등교육과 중등교육 간의 구분은 교육내용, 교육방법, 장래 진로의 모든 차원에서도 체계적 차이를 만들어냈었다. ...... 한편 현재 단계에서는 민중계급과 중간계급의 대다수 자녀들을 배제하는 일이 6학년 진급시에는 일어나지 않지만, 중등교육의 초기 몇 년 동안 점진적이고 제대로 감지할 수 없는 방식에 따라 지속적으로 진행된다. 뚜렷하게 구분되는 경계선을 가진 이전의 체계가 사회적 분할에 분명하게 대응하는 학교제도상의 분할을 내면화시켰던 데 반해, 분류체계가 유동적이고 경계선도 흐릿한 오늘날의 체계는 경쟁시험의 무자비한 엄밀성으로 상징되는 구식 체계만큼 엄격하거나 잔인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기대수준'을 여러 장애물과 학교수준에 맞추도록 강요함으로써, 원래 자체가 불명확하고 혼란스러운 여러 기대치를 한층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명확하게 구분된 사회적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 몽상의 여지는 거의 남기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가차 없이 요구되는 체념 속에서도 개인들을 편안하고 각자의 위치를 보장해주었던 구체제와 달리 당연한 권리로 주어지는 여러 희망과 사회적 정체성의 표상들과 관련해 나타나는 구조적 불안정성은 행위자의 여러 운동을 통해 사회적 위기와 비판의 영역으로부터 개인적인 비판과 위기의 영역으로 이동시켜버리는 경향이 있다. 부르디외, [구별짓기 La Distinction]
"너는 지금 세상으로 나가려 하고 있다. 그것도 자유의 약속이니 뭐니 하는 것만 지녔을 뿐 맨손으로 나가려 한다. 그러나 워낙 어리석고 비천한 인간들은 그 약속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나 인간사회에서 자유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없었으니까! 이 메마른 벌거숭이의 광야에 뒹구는 돌들을 보라. 만일 네가 이 돌들을 빵으로 변하게 할 수 있다면 전인류는 유순하고 은혜를 아는 양 떼처럼 네 뒤를 따를 것이다. 그리고 네가 혹시 빵이나 주지 않을까 하여 영원토록 전전긍긍하리라."
- 이반 까라마조프의 해석
http://www.mediamob.co.kr/gopemu/frmView.aspx?id=23416
주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나는 정말로 너희의 초하루 행사와 정한 절기들이 싫다. 그것들은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너희는 씻어라. 스스로 정결하게 하여라. 내가 보는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려라. 악한 일을 그치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배워라. 정의를 찾아라. 억압받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고 과부의 송사를 변론하여 주어라." (이사야 1:11-17)
유한계급 성원들이 고전적 지식 이외에 가장 빈번하게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법학과 정치학, 그리고 특히 행정학이다. 소위 이런 학문들은 본질적으로 소유권에 기반을 둔 유한계급이 담당하는 통치임무의 수행을 편리하게 만드는 일단의 처세술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학문에 대한 관심은 대개 단순한 지적 관심이나 인식 욕구의 발로는 아니다. 그것은 대체로 그 계급 구성원이 발 딛고 있는 지배관계가 부딪힐 수 있는 긴급현안들에 대한 실천적 관심의 발로이다. 통치임무는 고대적인 유한계급의 생활체계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약탈 기능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것은 유한계급이 생활자원을 착취하기 위하여 민중들을 통제하고 강제하는 실천방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학문분야들은 물론 그 분야에 내용을 제공하는 실천의 결과들도 인식을 자극하는 모든 현안들과는 별도로 유한계급에게 일정한 매력을 준다.
베블렌, [유한계급론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 (1899)]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조화를 이루는 자를 행복하다고 칭한다. 또 역사를 고찰할 때 행복의 관점을 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행복의 발판이 아니다. 행복한 시기들은 역사 속의 빈 자리들이다. 물론 세계사 속에는 충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충족은 행복이라고 지칭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부분적 이해관계들을 넘어서는 목적들의 충족이기 때문이다. 세계사 속에서 의미를 지니는 목적들은 추상적 의지를 통해 강력히 고수되어야 한다. 그런 목적들을 추구한 세계사적 개인들은 충족을 얻었을지 모르지만 행복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아도르노, [미니마 모랄리아]
http://www.cbs.co.kr/radio/sisa/show_sisa.asp?idx=42230
을사년스런 하늘 ‥ 이완용(1858~1926) 서해성의 인물한국사 -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주말 저녁에 보내드리는 시사자키에서는 굴곡 많았던 우리 현대사 속에서 명멸해 갔던 인물들을 복원해 내는 시간입니다. 서해성의 인물 한국사, 오늘은 일제 당시 대표적 친일파로 알려진 이완용의 궤적을 추적해 봅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 오늘은 왜 이완용을 선택했나? ◑ 서해성> 을씨년스럽다는 말뜻을 아는가. 이 말은 을사년스럽다가 원말이다. 우리 민족들은 실질적으로 나라를 빼앗긴 을사년의 울분과 상처와 우울을 두고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이러한 말이 나왔겠는가. 실로 아마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망하고 고구려가 마찬가지로 망한 뒤 1,200년 만에 처음 느낀 비참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한다. 하물며 세계 최강국 원(몽골)이 침략해왔을 때도 우리는 맞서 싸웠고 비록 치욕적인 지배를 받기는 했지만 통치체계를 완전히 내주어야 했던 것은 아니었다. 또 끔찍한 참화를 당하기는 했지만 임진란에는 일본과 맞서 싸워 마침내 적들을 물리쳤다. 그런데 정확하게 1백년전 우리는 정부 차원에서 온전한 전투 한번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국토와 국민을 일본제국주의 메이지왕의 손에 내어주어야 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 바로 이완용이다. 을사늑탈이 있은 지 올해로 1백년이다. 인간으로서 이완용의 자취를 더듬어보는 것은 새로운 흥미를 줄 것이라 확신한다. 이어지는 내용 |